작성일 : 08-10-27 22:22
彛,初(이,초)의 求國獄事 와 아리랑(펌)
 글쓴이 : 이관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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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말  이성계가  고려왕실의 종실이 아닌 자신의 인척 왕요를 공양왕으로 세워 역성혁명을 기도 할 무렵 求國獄事가 발생한다.

 요지는 이렇다

공양왕 2년(1390년) 明에 사신으로 갔던 順安君 昉(방)과 同之密直事 趙반이 돌아왔다. 그때 그들이 가져온 소식이 조정을 발칵 뒤집어 놓는다. 

明의 예부가 이들에게 말한 바에 따르면 坡平君  尹彛(윤이)와 中郞將 李初(정선이씨12世)가 명나라에 와서 황제에게 고려를 처 달라고 청했다는 것이다. 시중 이성계가 종실이 아니 인척 왕요(공양왕)를 세워 임금으로 삼았으며, 왕요가 이성계와 함께 군사를  움직여 중국을 범하려 해서 재상 이색 등이 반대하자 이색,조민수,이임,권중하,장하,이숭인,권근,이종학,이귀생 등을 잡아 살해하고 우현보 등을 잡아 멀리 귀향을 보냈다는 것입니다.
(조선왕조실록,이는 어처구니 없는 왜곡입니다)

 
그래서 크게 옥사가 벌어진다. 그것이 고려말 彛,初(이초)의  求國獄事 이다.

그런데 옥사중 성중의 관아와 민가 그리고 옥사가  침수되는 일이 벌어지자 형집행이 중지된다.

후에 무고임이 밝혀지자 李初는 明나라 율수현(강소성 소재)로 유배 당하고 그 곳에서 자결한다.

 
이초의 순절정신은 두문동에 전해지고, 그곳에 있던 고려의 遺臣들은 그의 정신을 길이 받들었다고 한다.

그중 전오륜은 동지 6명과 함께 거운산 칠현동에서 은거하면서 한시를 지어 부르며 고려에의 충절과 망국한 그리고 이초와 윤이를 애도하였다고 한다.

이것이 정선아리랑의 시원이라는 설이 있다.
정선 아리랑의 수많은 설중 역사와  연계가 사실적으로 접근할수있는 단하나의 설이기도 하다

 정선의 원로들은 아리랑이 아니라 "아리리"라고 강조한다.

"누가 나의 이억울한 심정을 알리오, 알아주소서"라는 뜻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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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이씨 12世 이초 선조님의 고려 순절이 어쩌면 아리랑을 통해 우리 후손들에게 전파되고 있는지 모릅니다 35世 이현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