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2-05-30 01:13
대륙고려를 아시나요...?
 글쓴이 : 이흥곤
조회 : 2,284  

고려가 현재의 압록강 이남 지역인 한반도 북부지역만을 영토로 가지고 있었다는 역사에 대한 반론이 있군요. 당시 고려는 중국대륙의 동쪽(황해 서남 해안) 및 북방 만주지역을 포함한 광대한 영역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이론이 있습니다.

고려가 우리가 알고있는 한반도 내의 영토로 고착된데는 이성계 조정이 왕건 고려조정보다 넓은 땅을 차지하였다는 말을 누군가 부역하여 만들었고,
고려조정의 지명을 일부 유적들과 함께 현금의 조선반도 땅에 부역하여 옮겨놓았음을,
그리고 부역하여 그 역사마저 그리 왜곡하여 놓았음을 쉽게 부정할 수 없음일 것입니다.

이성계 조정이 일제에게 국권을 상실할 때까지 옛 역사가 기록되어 있는 책자들을
목숨을 걸어놓고서 모조리 색출하여 태워버린 덕택?으로 중국과 섬에 사는 지엽들이 동아시아의 역사를 온통 그에 맞추어 놓은 것으로 여겨집니다.

양혼 선조가 북송 말 선박을 이용하여 고려에 귀화하여 경주에 정착하였다는 설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북송에서 배를 타고 고려로 갔다면 거의 벽란도(대동강)에 도착했을것이고, 거기서 경주로 갔겠지요. 바로 경주로 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베트남에서 배로 출발을 하였다면 고려는 너무 먼거리라고도 할 수 있고요. 바로 중국으로 갈 수도 있었는데.....

하지만 이 이론에 따르면 당시 고려는 중국대륙에 있었고 경주는 "요사지리지"에 의하면 중국의 현재 하남성 하간현이라고 합니다. 즉 양혼선조는 정치적 문제로 베트남에 있지 못하고 북송에 있었으며, 북송의 난을 피하여 걸어서 북송의 옆나라인 고려땅(중국대륙 내 소재)으로의 피난길에 오르게 된 것이죠.

당시 경주는 개경 남쪽인근에 자리하고 있었고요...



국조보감에 기록된 내용을 보면 

위화도에서 회군하기 전에 잠저(潛邸)가 있는 동리에 아이들의 노래가 있었는데 

그 노래에,   

서경성 밖에는 불빛이요 /      西京城外火色   

안주성 밖에는 연기로세 /      安州城外煙光   

그 사이를 왕래하는 이원수여 / 往來其間李元帥   

원컨대 백성들을 구제하소서 /  願言救濟黔蒼 하였다.   

이로부터 얼마 안되어 회군하는 일이 있었다고 기록한다.


고려의 수도는 예나저나 하북 청현(대성) 이었음에

지금으로 따지자면 쿠데타에 성공한  장군 이성계가  묵은 잠저는 분명 개성을 벗어나지 못하였을것이다.

조선태조가 되기전 고려의 무장이었던  이성계가 고려의 난세에 다니던 주요지명이

이 시에 나온다.


바로 安州와 西京이다.

평북안주 박천평야라고 중학고때 외우던 지리명이 나온다고 한반도 평안북도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 지명이 개경의 서쪽에 모두 나옴을 어찌하랴. 

(역사연구모임의 "심제"님의 글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