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1-12-06 03:47
친구란 바로 이런 것이다
 글쓴이 : nina
조회 : 463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그리고 친구

청록파 시인 목월과 지훈은 다섯 살 차이다. 그들은 친구다. 지훈은 복사꽃이 피어 있는데도 진눈깨비가 뿌리는 희한한 어느 흐드러진 봄날, 목월을 찾아 경주로 내려 온다. 
둘은 석굴암을 오르기 위해 불국사에 들러, 가지고 온 찬 술을 나무 그늘에서 나눠 마시고 그 취기로 지훈이 한기가 들어 재채기를 한다.
형뻘인 목월은 입고 있던 봄 외투를 벗어 오한으로 얼어 있는 지훈의 가슴을 따숩게 데워준다.

지훈은 보름동안 경주에 머물면서 목월과 함께 안강 자옥산 기슭 옥산서원 '독락당'에 방 하나를 얻어, 그동안 밀려 있던 이야기 보따리 끈을 풀어 헤친다.
세상에 관한, 시에 관한, 그리고 그들의 진로에 관한 수많은 얘기들을 나눴으리라.
 
[차운산 바위위에

하늘은 멀어 산새가 구슬피 울음운다.

구름 흘러가는
물길은 칠 백리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노을이여

이 밤 자면 저 마을에 꽃은 지리라
 
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인 양하여

달빛 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가노니.....,]

  - 조지훈의 시 '완화삼' 전문 -

경주 여행을 마치고 집이 있는 영양 주실 마을로 돌아간 지훈은 완화삼(玩花衫)이란 시를 써 '목월에게'란 부제를 달아 경주로 보낸다. 
지훈은 산새 소리, 유장한 강 물길, 저녁 노을, 낙화의 슬픔 등 애잔한 이미지를 안주할 곳 없는 나그네와 결합시켜 유랑과 한, 그리고 애수가 적절히 가미된 명시로 탄생시킨다. 
목월이란 친구가 없었다면 이 시가 세상에 나올 수 있었을까? 

친구란 바로 이런 것이다.

'가고 옴'이 친구 사이에서 서로의 이익을 위한 형태로 이뤄질 때는, 그것은 천박하기 짝이 없는 일이지만, 목월과 지훈에게서 완성된 시의 '주고 받음'은 우리 문학사에 영원히 빛나는 금자탑으로 기록될 것이다.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 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 박목월의 시 '나그네' 전문 -

목월은 지훈에게서 '완화삼'이란 시를 받고 바로 엎드려 '나그네'란 시를 쓴다.

그는 이 시의 표제 옆에 '술 익는 마을의 저녁 노을이여- 지훈에게' 라고 쓰고,
이를 주실 마을로 올려 보낸다. 

지훈이 보내온 시의 답시로 쓰인 '나그네'는 '완화삼'의 이미지와 비슷하지만 절제되고 표백된 간결미는 아주 특출하다.

그래서 이 시는 "우리나라 낭만시의 최고"라는 칭송을 받는다.

목월에게 지훈이라는 친구가 없었다면 이 시 역시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친구는 그래서 위대하다.

세상에는 세 종류의 친구가 있다고 한다. 

"꽃과 같은, 저울과 같은,
산과 같은" 친구가 이들 세 유형이다.

꽃과 같은 친구는,
지고 나면 돌아보지 않고,

저울과 깉은 친구는,
이익을 먼저 따져 무거운 쪽으로 기운다고 한다. 

그런데 산과 같은 친구는,
생각만 해도 마음이 든든하고, 한결같은 마음이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산과 같은 친구가 서울 하늘아래 살건만 쉬이 못만나고 있으니 이 또한 슬픔이 아닌가.

주말에 시간을 내서 꼬셔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