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1-12-17 22:34
🍒삼순이를 아시나요?
 글쓴이 : nina
조회 : 430  

을지로를 지나다 발길을 돌려 세운 적이 있어요. 중소기업빌딩 앞에
세워진 돌비석 때문입니다. 직사각형 오석에 쓰인 글씨가 내 시선을
잡은 것입니다. ‘企業人天下之大本’
 
‘농자대본’이던 우리 사회가 얼마나 혁명적인 변천을 했는지 알리는
현장입니다. ‘기업인’ 이란 명패 앞에 ‘사농공상’의 신분 서열도 완전
뒤집혔지요. 기업이 천하 대본이 되기까지, 지난 세월 속에는 잊힌
세 여자 순이의 이름이 있습니다.
 
식모, 여공, 버스안내양. ‘삼순이’의 주인공들입니다. 그들이 겪은
고난은 우리 현대사 이면에 설움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반 세기만에
나라가 기적 같은 발전을 거듭하는 동안 함께 땀 흘리고도 우리들
기억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그들을 식순이, 공순이, 차순이라고 불렀었죠. 이름에 붙인
‘착할 순(順)‘자처럼 시키는 일에 순종하고 늘 조연의 삶을 살면서
자신을 낮춰보는 시선을 견뎌야 했습니다.
 
저널리스트 정찬일 씨가 펴낸 ‘삼순이’는 그 시대를 다시 재현한
묵직한 서술 더미입니다. 방대한 자료조사를 통해 195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삼순이의 한 시대를 복원했습니다.
 
우리가 겪어온 이야기인데도 곳곳에서 가슴 뭉클해지는 장면과 마주
칩니다. 그 시절의 풍경이 슬프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하고 아련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우리가 살아온 삶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식모→식순이→가정부→가사도우미로의 변천은 일제 강점기에 등장한
식모란 이름에서 비롯됩니다. 일본에서 건너온 많은 주부들이 한국
여성에게 가사 일을 의존하면서 식모가 대표적인 여성 일자리로
굳어지면서죠.
 
일본 가정은 한국 가정보다 임금이 두 배 많은 데다 인간적인 대우도
해주어 여성이 선호하는 일자리가 되었답니다. 식모 일자리가 위기를
맞은 건 해방되면서 였고, 6.25로 전쟁고아가 쏟아진 것이 결정적
요인이었습니다.
 
먹여주고 재워만 달라는 시절엔 판자촌 셋방을 살아도 식모를 둘
정도였으니까요. 당시 한 신문은 ‘서울 성북구 셋방 사는 가구 7할이
식모를 두었다‘고 보도할 정도였죠.
 
식모는 시골에서 상경한 소녀의 첫 직장입니다. 이를 발판으로 공장,
버스회사, 미용실 등으로 지경을 넓혔지요. 이중에도 버스 차장은
여성 일자리가 귀한 때에 임금도 상대적으로 높아 일등 신붓감으로
꼽혔습니다.
 
그러나 하루 18시간을 콩나물버스에 시달리고 잠은 4시간밖에 못
자는 중노동자였지요. 각성제를 입에 달고 살았고, 너무 오래 서 있다
보니 이런저런 부인과 질환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승객과 요금 시비를 벌이다 폭행을 당하기도 하고 달리는 버스에서
떨어져 중상을 입는 사고가 빈번한 직업이어서 곳곳에 마음 숙연해
지는 사연들이 감정선을 건드립니다.
 
10대 소녀가 많았던 안내양의 급여 사용처가 그들의 고단한 삶을
일러주죠. 수입의 65%가 부모 생활비와 형제 학비로 쓰면서도,
자신이 쓴 용돈으로는 3% 남짓을 지출할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번 돈으로 동생에게 먹을 것을 사주며 “이 순간처럼 땀 흘린
보람을 느낀 적은 없다“고 말했던 그들입니다. 못 배운 한을 풀려는
노력도 눈물겹습니다.
 
이틀 일하고 하루 쉴 때를 이용해 검정고시 학원에 다니는 학구파가
많아 해마다 검정고시 합격자 수로 경쟁하는 버스 회사의 새 풍속을
만들기도 했죠. 임금이 준다고 정부의 격일제 근무를 반대했던 그들.
그렇게 번 돈으로 공부하고 집안을 살렸습니다.
 
70년대 들어 각광을 받은 직장은 공단입니다. 버스회사에서 이직한
여성들이 찾는 곳이죠. 급여와 근무 여건이 좋고 산업체 부설학교가
세워진 것도 매력적이었습니다.
 
1967년 구로공단을 찾은 박정희 대통령이 어린 여공에게 소원을
물었을 때 “또래처럼 교복 한번 입어보고 싶어요” 라는 답변이 돌아
왔어요. 감정에 치받힌 대통령이 소녀들 앞에서 지시합니다.
 
“법을 뜯어고치든 절차를 바꾸든 공단 아이들에게 똑같은 배움의
기회를 주라”고. 그렇게해서 등장한 것이 산업체 부설학교였어요.
 
여학생의 상징인 단발머리를 사모했던 여공들이 머리를 자르려고
줄을 서서 기뻐하던 모습들이 선연합니다. 부설학교는 소녀들의
꿈을 키운 요람이었지요.
 
이들의 근면과 흘린 눈물을 빼고 대한민국이 이룬 성취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꿈 많던 소녀들이 다 백발이 된 지금, 오늘도
어린 시절의 추억을 아파하면서도 곱게 기억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