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0-01-28 11:03
화산군본전에 대하여
 글쓴이 : 이기철
조회 : 5,801  
花山君本傳과 正史와의 차이

旌善李氏  司直公派世譜에 수록된 花山君本傳을 읽다보면 그 내용이 正史와는 매우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1. 7대 황제 昊旵는 영종의 맏아들, 소성공주(紹聖公主)가 용상의 여동생이다.- 花山君本傳
  <<대월사기전서의 기록 >>
  1) 龍翰은 6대 황제 英宗 천조(天祚)의 6번째 아들이며, 소성공주는, 참(旵)의 둘째 공주
 
2. 용상이 英宗의 동생이다..- 花山君本傳
    <<대월사기전서의 기록 >>
  1) 6대 황제 용한은 3살 때 황제로 즉위하였다. 어머니는 당시 베트남 大族인 杜氏의 여
      식으로 嫡皇后가 아니었다. 영종의 장자는 용창(龍昶)이고, 재위를 물려 받을 황태자였다. 
      그런데, 태후 두씨 부인이 아들 용한을 낳자마자, 영종 재위 37년 庶人으로
      유폐되었다. 그리고 4개월 후 용상이 황태자로 봉해졌다. 또한 英宗은 용한이 태어난
      후부터, 병으로 거동하지 못했다.
     
3. 용상 정권말기-소성공주가 진일조에게 시집갔고, 그로 인해 진일조가 정권을 얻어 마음대로 
    전 횡하였다.- 花山君本傳
    <<대월사기전서의 기록 >>
    1) 대월사기의 기록은 영종이 형정에 밝지 못하고, 지나친 유람으로 왕조의 세가 무너
      지기 시작했다고 기록한다. 왕의 무능으로 나라가 혼란에 빠지고, 도적이 난
      무하였다. 1209년 1월, 황제가 도적을 토벌하고 돌아온 범병이를 가두어 버리자, 그
      따르는 군사이 궁궐을 범하였다. 이때 황제 용한과 황태자 참(旵)이 궁궐을 버리고
      도망간다.  황태자 참이 海邑 유가촌(劉家村)으로 갔다. 그곳에서 陳李의 딸에  반해 그
      녀를    취한다. 그리고 진씨 일가의 도움을 받아 궁으로 돌아온다.
      - 진씨의 중앙 등장은 황태자 참과의 인연이다. 이때 황태자 참의 나이 14세이다.
    2) 이후, 진씨 일가의 전횡이 시작된다. 진이의 둘째 아들 진사경이 모두 전횡하였다.
      그러나, 진사경은 황태자 참이 즉위한 이후, 모든 전권을 휘둘렀다. 그리고 황제
      나이 28세때 진사경이 죽었다. 그러자 진이의 장남이며, 진사경의 형인 진승(陳承)
      이 정권을 이어 받았고, 강압적으로 황제 참을 몰아내고 그의 둘째 딸인 소성공주를 황위에
      올려 놓는다. 그녀가 소황이다.  그리고 바로 그의 아들 진경과 혼인시킨다.
      이때 소황, 진경 둘다 방 8세의 어린나이였다. 혼인 후 즉시 소황이 진경에게 선위한다.

4. 영종이 붕어 시, 삼공인 평해공 군필, 진일조, 황숙 용상에게 ......황태자의 누님인 소성공주와
  사위인 진일조가....

  - 대월사기의 기록엔 전혀 없는 존재 군필이 신평이씨의 시조라....?????
  - 소성공주는 황태자 참의 누님이 아니라 둘째 딸 인데....진일조는 누구 ??????

화산군본전과  대월사기는 일치성이 전혀 없습니다.
창작이죠...   


현웅 10-01-29 20:41
답변  
우리 자료부장님 추위에 잘 지내고 계신지요
미세한 부분까지,,,,
수고 많으셨겠습니다
화산군 본전을 집필하면서 대월사기의 이해도가 부족했나 봅니다

아무튼 자료부장님의 열정에 박수를 보냅니다
건강하십시요
이만수 10-01-30 13:41
답변 삭제  
이기철 자료 부장님,

역사에 해박 하시니 하노이 도읍 천년을 맞아 우리 정선이씨 역사를 정립 하도록 하면 좋겠습니다.
같이 한번 만나서 앞으로의 방향을 정 해 봅시다.
이 찬걸 사무 총장과 같이 유인선 교수도 한번 뵙도록 합시다

이만수 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