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10-25 08:58
족보 필요하십니까?
 글쓴이 : 김포정인 (211.♡.182.32)
조회 : 452  
족보 만들려고 하시는 군요. 정선이씨요? 제가 좀 아는 성씨인데, 어째 좀 도움을 드릴까요? 70년대 중반 약관(弱冠)의 나이로 국립중앙도서관을 찾았을 때 듣던 이야기를 이순(耳順)을 앞둔 나이에 두두리 선조 휘 이창현께서 편찬한 성원록을 보기 위해 들른 이곳에서 다시 들으니 어찌 묘한 느낌이 났습니다.

정선이씨의 뿌리를 찾기 위해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던 대학 1학년 때 학교도서관에서 정선이씨의 유래를 담은 성씨소개 책자를 발견하고 집안의 어른들에게 이 사실을 말씀드렸습니다. 곧 정선이씨의 족보가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고, 이 사실을 전해들은 문중의 기로(耆老)들이 화살같이 국립중앙도서관을 찾았습니다. 거기에서 문중의 기로들도 내게 접근했던 그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곧 돈이 건네지고 고증 없이 문중의 가승첩의 내용이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된 정선이씨족보의 행간에 끼워지며 문중의 족보가 완성되었습니다.

정선이씨! 하도 귀한 성씨이기에 정선이씨를 조우하는 일조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저 희성(希姓)이어서 그러려니 하고 지내 온 차에 인터넷의 발달로 여기 저기 정선이씨들이 나타나니 마냥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개인 사정상 그들과 함께 하지 못했지만 활동내용을 죽 홈페이지를 통해서 전해 듣고 있었습니다.

정선이씨 종친회를 결성한다는 소식을 듣고 본 문중에서도 회의를 하였습니다. 문중회의에 참석한 사람들 역시 또 다른 정선이씨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매우 놀라워했습니다. 더욱 놀라워한 것은 정선이씨가 베트남에 연원을 둔 성씨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인 무인보가 적시한대로 시조 휘 이양혼이 안남국왕의 셋째 아들이었다는 사실만 알고 있던 문중들은 안남이 베트남이라는 사실에 적이 놀라는 눈치였습니다. 왕족이라는 사실보다는 베트남 출신이라는 것에  더 신경을 썼습니다. 왜 하필!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전주이씨 종친회에서 편지가 온 적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꺼내며, 정선이씨가 아니라 전주이씨일 것이라는 주장을 펼치는 이도 있었습니다. 왜정 때 창씨개명으로부터 환원하면서 일부 문중이 전주이씨로 한 사실이 있기에 자못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을 잠재운 것은 문중의 선조들이 손수 적어 수백 년을 내려낸 가승첩이었습니다. 선조들의 생년몰일이 적혀 있는 이 작은 가승첩 하나가 문중의 소란을 잠재웠습니다. 거기에는 분명 ‘정선이씨’ 네 글자가 적혀 있었던 것입니다.

정선이씨인 것이 분명해졌지만 문하시중 휘 이의민을 전해 듣는 그들의 얼굴은 또다시 일그러졌습니다. 천민장군, 노비의 아들, 금강야차, 비리 등 온통 부정적인 단어들이 이의민 관련 자료들을 살펴 본 그들의 뇌리에 깔리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중랑장 휘 이초는 조선 건국을 근거 없이 우롱한 넋 나간 인사쯤으로 치부되고 있는 현실도 읽었습니다.

할 일이 분명해졌습니다. 정선이씨의 역사를 바로 세우지 않고는 문중을 하나로 모으는 일은 물론 전체 정선이씨들이 온전한 종친회를 만들어 가는 일도 난관에 봉착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서두에 말씀드린 내용은 아마 많은 다른 문중에서도 경험하셨을 내용이라 사료됩니다. 대동보를 만드는 일은 정선이씨로서는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이를 위해 불철주야 노력을 아끼지 않는 편찬위원장을 비롯한 여러분의 활동에 외람되지만 찬사를 보냅니다.

지금의 젊은이들은 대동보에 큰 관심이 없습니다. 대동보편찬은 족보를 애지중지하는 세대에게나 관심을 끌 수 있는 사업입니다. 이들에게 조상 운운하며 애걸해봐야 별무소득일 것입니다. 많은 종중을 거느린 대족들도 사업전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렇지만 이들의 참여가 없으면 대동보 편찬은 물론향후 종친회가 발전해 나가는데 있어서도 난관이 예상됩니다. 그러므로 대동보 편찬은 문중의 젊은이들이 동참하는 사업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젊은이들이 동참하는 사업이 되려면 인터넷을 활용한 사업이 되어야한다고 사료됩니다.

요즈음 족보를 발행하는 일은 옛날처럼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돈이 많이 드는 일도 아닙니다. 다 아시는 내용이겠지만 혹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인터넷을 활용한 족보 편찬에 관하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인터넷 족보에 앞서 전자족보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전자족보는 족보편집프로그램을 구입하면 됩니다. 시중에는 여러 족보편집프로그램이 있습니다. 그 다음 이 프로그램에 무인보를 비롯한 각 문중의 자료를 입력하면 됩니다. 물론 입력은 우리 스스로 해야 합니다. 남을 시켜서 한다면 돈이 들겠지만 우리 스스로 한다면 필요한 것은 시간뿐 입니다. 이로써 전자족보의 근간을 만든 다음 이를 인터넷에 올리는 것이 다음 일입니다. 인터넷에 올릴 때에는 방문자(세와 계파를 모르는 정선이씨)들이 자신들의 인적사항을 올릴 수 있도록 하고, 이를 족보편찬위원들이 상의하여 필요한 조처를 취하면 됩니다. 이때 많은 종중들이 인터넷을 방문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 우리들의 임무입니다. 또 여기에는 이들이 자랑스럽게 자신들의 이름을 등재시킬 수 있는 콘텐츠가 필수입니다. 이렇게 하여 인터넷 족보를 완성하면 족보 인쇄는 거의 끝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족보편집프로그램에 인쇄기능이 있으니까요. 요즈음은 1권의 책도 인쇄가 가능한 시대입니다. 국립중앙도서관과 국회도서관 납본분만 인쇄하여도 상관이 없습니다. 일반 종중들께서는 굳이 대동보를 소장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인터넷에서 언제든지 대동보를 보실 수 있으니까요.

인터넷을 활용한 족보 편찬을 말씀드리는 것은 젊은이들의 참여를 권장하는 측면 외에도 보다 많은 정선이씨를 대동보에 올리고자 하는 뜻이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바로 전의 글에서도 소개드렸듯이 남한에 생존하고 있는 정선이씨는 무인보에 속하지 않는 분들이 많게는 전체의 3분의 2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까지 밝혀진 안무사공 휘 이우의 후손 두두리 정선이씨 26세 항렬의 가문 수가 최소 18개 가문에 이릅니다. 이것은 22세 이후의 항렬이 추적되지 않고 있는 사용공파를 제외한 숫자입니다. 18개 가문 중의 하나인 이증생 가문의 현재의 인구가 200여명 인 것으로부터 역산하면 3,600이라는 숫자가 나옵니다. 18개 중 3분의 2만 세계를 이었다 해도 2400명입니다. 그래서 많으면 전체의 3분의 2라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종친회 여러분들이 그간 활동을 해서 느끼셨을지 모르겠지만 월남하신 분들의 수는 많지 않습니다.

대동보편찬을 계기로 잘못된 계파도 바로 잡아야 된다고 봅니다. 서두에서 소개드렸던 저의 문중의 예에서와 같이 무인보에 짜깁기하여 족보를 만든 문중도 계실 것이라 예상됩니다.

이번 대동보는 정선이씨의 정신이 녹아나야 하는 대동보가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정선이씨의 역사를 바로 세우고 이로부터 정선이씨의 정신을 정립하는 일을 반드시 선행하여야 합니다. 정선이씨대동보는 책이라는 하드웨어가 우선되는 것이 아니라 정선이씨의 고귀한 콘텐츠가 주가 되어야 합니다.

많은 예산을 들여 대동보를 편찬하는 일은 요즘 시대와는 맞지 않는 일입니다. 적은 돈으로도 충분히 대동보를 발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선이씨의 수가 많지 않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더욱이 앞서 말씀드렸던 국립중앙도서관에 상주하다시피하면서 족보도움이를 자처하는 사람들과 진배없는 부류의 도움으로 정선이씨의 대동보를 편찬하는 일은 재고되어야합니다.

진정한 베트남의 황족으로써 정선이씨가 해야 할 사업이 많이 있습니다. 종중들의 뜻을 모아 더 뜻있는 사업을 펼친다면 정선이씨의 고귀한 정신이 살지 않겠습니까?
 
끝으로 지난 5년간 준비해왔던 ‘정선이씨의 역사-두두리평전’(4×6배판 700여 쪽 분량)이 탈고 중에 있습니다. 곧 여러 종중들께서 편히 읽으실 수 있도록 방법을 강구하겠습니다.


이찬걸 13-10-25 19:10
 116.♡.180.27 답변 삭제  
오늘도 방문의 격려와 도움이 되는 자문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귀 종중님의 말씀을 귀담아 잘 듣고 있습니다. 우선 우리 역사를 약관의 나이부터 깊이 연구하시고 애착을 가지시고 많은 우려를 갖고 계심에 존경을 드리며 탈고중인 '정선이씨 평전'이 아주 객관성있는 자료들로 서술되어 우리 가문의 역사가 대외적으로 평가절하되는 일이 없기를 희망합니다.

 오늘 주신 자문에 대해 제 견해를 좀 드릴까 합니다.

1. 종중님은 정선이씨를 좀 아시는 분이 아니라 '정선이씨'입니다.......도움 주실 수 있는 것이 있으면, 당연히 주셔야합니다. 그것이 종중의 도리이고 책임입니다. 종중님이 족보가 없는 것을 얼마나 서러워하고 때로는 아쉬워했습니까? 정선이씨 모두가 이 기회에 규합하여 종중님이 지적한 문제들을 해소하고 보다 정확한 기록으로 새 대동보를 편찬하기위해서 종중님같은 분들의 조언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이제 서로의 애정이 필요합니다. 대종회나 족보편찬위원회가 때론 부족하더라도 좋은 가르침에 따뜻한 애정을 같이 담아주십시오!
정원사가 꽃을피우게는 못하지만 핀 꽃에 물을 주고 더 오래가도록, 예쁘게 가꿀 수는 있다고 합니다.

2. 전자족보가 선행된 후 인터넷 족보로 현대 젊은이 들에게 어필하게 함이 바람직하며 그렇게 할 경우 많은 비용이 필요치 않다! ....맞는 말씀이고 또 하나의 견해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案입니다. 그런데 이미결정이 된 상황에서 이렇게 異論을 제기하시면 계획에 많은 혼선이 옵니다.
그러기 때문에 종친회 모임에 자주 참여하시어 좋은 의견을 주셔야 하는 것입니다.

3. 종중님의 案을 저도 생각해 봤습니다. 인터넷 족보만 만들면 소장할 족보를 사실상 편찬 못하게 됩니다. 인터넷으로 보게 되면 누가 10만원씩 주고 서책을 구입하겠습니까?
어렵지만 역사적인 편찬을 하고 종중들에게 분질(판매) 한 후에 인터넷 족보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4. 그러나 지금이라도 중앙종친회에 귀 종중님의 가문께서 의견을 올릴 수 있다고 봅니다. 저도 대종회 임원들에게 귀종중의 의견을 참고로 드리겠습니다. 저희는 단지 '누군가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하고 대종회 결정에 따라 일하는 것 뿐입니다.
  아무리 좋은 案이면 뭐하겠습니까? 실행하는데 아무도 협조 안하면 인쇄물인들, 전자족보인들 어떻게 만들어지겠습니까? 이런 좋은 의견을 주신 것 감사합니다.

 * 미국에서 월남전 파병을 반대했던 의원들도 파병이 결정된 후로는 자진하여 참전했었다는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결정이 잘못되었을 수있습니다. 그러나 결정된 것이라면 모두가 협조해서 성사시키는 아량과 협조정신이 민주주의입니다.

  정선이씨에게 75년 만에 찾아온 협력할 기회입니다. 그러나  단언하긴 힘든 형편입니다.
왜냐하면 종중님같은 참고의견을 주시는 관심 종중들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이 모습이 정선이씨의 진실이 아니기를 정말 바라고 있습니다.........................

* 빈말 아니고, 아주 진심으로 귀 종중님께 감사드리며,  귀 가문이 정선이씨 족보에 잘 편성되길 기원합니다. 많은 협조 부탁드리고 개인적으로도 자주 지도편달 부탁드립니다.

                                                                                          족보편찬위원장  이찬걸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