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10-28 05:12
김포 정인 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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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이현웅
 조회 : 13,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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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오랜만에 방문해 님과 같이 귀한 분을 뵙습니다
정선이씨의 후손으로서 너무나 훌륭한 자료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얼마전 까지 정이지 라는 학자 이상의 (자칭 학생)훌륭한 분이 좋은 자료들을 많이 올려주셧는데 이번에 님의 글을 접하니 무척이나 반갑습니다
글의 전개과정이나 형식 및 어휘력구사등,이 두분이 판이한것 같기도 하고 대동소이 한것 같기도 하고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죄송합니다
아무튼 우리 정선 이씨 에게는 큰 행복 입니다
정선이씨라는 문중을 높은 학식으로 연구하고 계신분이 김포정인,정이지 라는 두분의 훌륭한 학자이상의 분들이 계시다니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입니까?
그러나 한가지 아쉬운것은 너무나 형편없이 평가절하 되어 있는 우리의 위상을 두분 정도의 실력이라면 정선이씨 문중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바로 세우는 것이 학자의 본분이 아닐까 생각 됩니다
더 더욱 정선이씨의 후손이라면 외부의 학자들에게 의존할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정립하여 이론의 여지가 없게 만드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되어지는 군요
제가 맨처음 정선이씨 초가집 이라는 블로그를 만들어 놓고 정선 이씨 분들을 기다리고 있을때 마냥 기다릴수 만은 없어 수없이 찾아 다녔습니다
그러던중 여러분과 통화도 하고 여러곳을 보기도 했습니다 만 그중 제대로 된 카페형식의 그룹을 보았습니다
카페의 내용이나 형식으로 봐 제 생각에는 곤(坤,정선이씨 34世)자 돌림 형제분들이 많으셨으며 친목을 도모하시는 모임같아 보였습니다
제 선친께서도 坤자 돌림(일곤)이라서 무척이나 반가웠습니다
때 마침 인터넷을 통해 같은 항렬의 이현섭(35世)氏와 이찬걸(33世) 할배를 만나 종친회 관련 일을 추진 중이라서 함께 하고자 글을 남기고 다음에 방문해 보니 제 출입이 막혀 있었습니다
언급하신것처럼 정선이씨라면 어느누구를 막론하고 함께하는것이 우리 종친회의 본분이며 기본 자세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坤자 돌림 형제분들이 많이 계시던 그 카페는 그렇지 않은지 모르겠습니다
그때 제 기분과 입장이 그런 생각을 들게 햇습니다
제가 잘못한 일이 있거나 잘못 알고 있기를 바랍니다
그후로도 제가 몇번 방문해 소식을 알리려고 노력했습니다 만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우리 문중은 전쟁전 이북에 많이 살고 있엇던듯 합니다,저 역시 그랬구요
저희 삭령가문의 본거지{집성촌(철원 승양리) 이웃}도 현재는 군사분계선 이북 쪽 입니다
현재 남한의 행정구역상 공식명칭으로는 경기도 연천군 중면 여척리로 등재되어 있기는 합니다
물론 갈수도 올수도 없고 국가기록원 자료에는 삭령읍(남면,북면,삭령면) 여척리에 약 30호의 정도의 정선이씨가 살고 있던 기록이 나와 있습니다
연천군 중면 군지에도 대동제까지 지낸 자료가 있습니다
족보와 호적과 국가기록원 자료가 모든것을 증명합니다만
피난민의 신세로 족보를 간수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것 입니다
그것이 현재 없는 분들이 많은 이유가 아닐까요?
옛날의 족보란 그 집안에서 제일 먼저 쳉겨야 하는 귀중한 자료 였습니다
허나 세월이 흘러 이제는 인터넷이라는 요술쟁이에게 자리를 뺏기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늙은이 (66세)들은 아직도 종이 책이 격에 맞고 익숙합니다
또한 할아버지나 아버님 의 보물처럼 보관하고 싶은 심정이기도 합니다
이런 관습이 우리세대가 마지막이라는 각오는 이미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종이족보를 간직해 보고 후세들에게는 종이족보의 존재여부를 알려주기 위해서도 족보제작은 이루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는 종이 족보와 전자족보를 함께 보유한 최초의 유일무이한 자랑스러운 정선이씨 후손들이 기를 기대합니다
김포정인님,참여와 관심 진심으로 정말 정말 고맙습니다
점점 추워지는 날씨 몸건강하시고 늘 좋은 자료 더 많이 많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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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러분 제가 좀 불편합니다 치료중이며 많이 좋아지고 있습니다
다행인지 글은 쓸수 있습니다
그동안 연락 못해 미안합니다
35世 이현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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