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11-07 15:37
김포정인께 한말씀 전합니다.
 글쓴이 : 1조클럽 (211.♡.142.213)
조회 : 490  
김포정인님 글을 보고 참으로 애석한 부분이 있어서 한말씀 전합니다.(전한다는 표현에 기분 상할수도 있겠으나 본인이 진실로 정선이씨인지 혹은 맞다면 정선이씨 몇세손인지 이름 또한 밝히지 않으니 글에 위아래가 절제 되는 바입니다.)

김포정인께서 과거 대학1학년때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된 정선이씨 족보를 찾게되었고 이후 돈이 건네지고 고증없이 가승첩이 정선이씨 족보의 행간에 끼워져 족보가 완성되었다고 하였는데 정선이씨에 대해 학자 이상의 내력을 가지신분께서 왜 고증없이 가승첩을 정선이씨족보의 행간에 끼워넣는것에 반대를 하지 않으셨는지 궁금합니다. 당연히 정확한 고증이 이루어진후 진실로 정선이씨 후손인지 확인하는것이 순서 아닌가요? 한가지 의문이 듭니다. 혹 김포정인께서 실명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가 고증없이 돈으로 족보를 완성하였다는것에 진실로 정선이씨인지 아직도 의문이 있거나 정선이씨 후손이라는것에 창피함을 느끼셔서 그런건 아닌가요?

문중분들이 안남이 베트남이었다는것에 적잖이 놀랐다고 하셨는데 세계사를 포함한 역사공부 조금만 해보면 안남이라는 단어가 중국의 속국으로 있을때의 베트남을 표현하는것이란건 상식으로 아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어찌해서 정선이씨 종친회 결성후에나 안남이 베트남이었다는것을 알게 되셨는지 참으로 아이러니 합니다. 정선이씨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시는 문중에서 말입니다.

조상이 베트남인이었다는것에 문중에서 '왜 하필' 이라는 느낌을 가졌다고 하셨는데 현재 한반도에 토착 성씨가 몇개나 되겠습니까? 많은 성씨가 외래에서 흘러 들어온것인데 베트남이면 어떻고 캄보디아면 어떻고 중국이면 어떻고 그게 무슨 대수입니까? 우리 조상이 누구였다는걸 정확히 안다는게 중요한것 아니겠습니까? 오히려 조상이 누군지 전혀 모르는것이 더 황망한 일이라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문중 일부에서 전주이씨 일것이라고 주장도 했다고 하는데 창씨 개명부터 환원하기까지의 시간이 백년이 흐른것도 아니고 일부 문중이 원래 정선이씨 였다는것을 잊고 전주이씨로 환원했다는것이 참으로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집안에 내려온 가승첩이 모든 의구심을 잠재웠다고 하셨는데 그 가승첩에 대해서는 고증을 한번이라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집안에 대대로 내려온 문서가 있다고 그냥 믿는건 자가당착에 빠질 위험이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한반도 반만년 역사에서 노예제도가 없어진지가 그리 오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보니 노예해방이 되고 노예 신분이었던 사람들이 어느날 경제적으로 풍족해지고 자손이 늘어나면서 집안의 뼈대를 세우는것에 큰 열망을 가졌다고 합니다. 결국 그들은 족보를 돈주고 만들고 돈주고 사는 경향이 많았다고 합니다. 저는 제 스스로도 정선이씨가 맞는지 의구심이 들때가 있습니다. 과거 백년전 우리 집안 직계 어른이 무슨 일을 하셨는지 족보에 씌여있는 내용말고 진실을 알고 싶을때가 많습니다. 만일 김포정인님 문중 분들중 아직도 정선이씨의 조상이 베트남인이었다는것에 '왜 하필' 이라는 느낌을 갖고 계시다거나 혹은 정선이씨가 아니고 전주이씨라 믿으시는분들이 있으시다면 가승첩에 대한 고증을 꼭 해보시기 바랍니다.

이의민이라는 인물은 흘러가는 역사에 존재했던 한사람으로만 평가하면 그만이라 생각합니다. 그 사람이 천민이었다던지 나쁜일을 했다던지 하는것에 우리와 같은 정선이씨 였다고 부끄러워할것은 전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성계가 조선을 세울때 고려왕으로부터 웃으며 옥쇄를 받은것인가요? 이성계는 고려에서 보면 역적입니다. 오늘날 이성계를 욕하는 사람이 많던가요! 고려 신하였던 이성계가 왕을 보필하지 않고 스스로 왕이 되어 고려를 폐하고 조선을 세운것이 신하로서 나쁜일을 한것이라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이에 얼굴 일그러지는 전주이씨들을 보셨나요? 현재 전주이씨 가문은 찬란하게 빛날뿐입니다. 정선이씨 가문에 나쁜일 한 조상도 있겠지만 좋은일 한 조상도 많을테니 조상중 누군가 나쁜일을 했다고 신분이 천했다고 얼굴 붉히는건 아니라 생각합니다.

전자족보 말씀 하셨는데 미국에서 왜 지금도 중요한 문서를 필름 형태로 보관하는지 아십니까? 요즘 dvd같은 usb같은 쉬운 저장 장치를 놔두고 말입니다. 그건 시간이 흘러 dvd나 usb의 자료가 보관이 잘되었다해도 어떤 이유로 자연히 내용이 소실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라 합니다. 그래서 필름으로 보관하고 책으로 보관하는것입니다. 인터넷 발달이 미래에는 더욱 활발할것이고 아울러 더 엄청난 과학 발전이 있으리란건 자명한 일입니다. 하지만 수백년 수천년이 지난 미래까지 전해지는 역사는 책의 형태로만 남을거라 감히 생각해봅니다.

김포정인께 끝말 전합니다.
김포정인님 집안 가승첩에 대해 철저한 고증을 해보시기 바라며 정선이씨 후손이라는것에 조금이라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으신다면 정확한 세와 이름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종친회 모임에도 나오셔서 좋은말씀과 피가 되는 말씀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정선이씨 37세 이상용

김포정인 13-11-08 07:36
 211.♡.182.32 답변  
뭔가 오해하고 있는 것 같군요. 아래는 제가 말씀드린 ‘정선이씨의 역사, 두두리평전의 차례입니다. 잘 헤아려주십시오.




차례



1,  두두을(豆豆乙)
2,  두두리(豆豆里)
3,  두두을(豆豆乙) 신앙(信仰)
4,  고려(高麗)의 두두리
5,  두두리 이의민(李義旼)과 해상무역(海上貿易)
6,  당(唐)의 대외개방정책(對外開放政策)과 재당신라인(在唐新羅人)
7,  번진체제(蕃鎭體制)의 당(唐)과 제(齊)나라
8,  재당신라해상무역 그리고 청해진(淸海鎭)과 장보고(張寶高)
9,  두두리 이원좌(李元佐)와 재당신라해상무역
10, 북해무역(北海貿易)의 번성과 신라
11, 장보고의 정치개입(政治介入)과 실각(失脚)
12, 혼란시대의 신라와 당 그리고 재당신라해상무역
13, 북해무역의 쇠퇴(衰退)
14, 재당신라해상무역의 천주(泉州)시대
15, 당의 멸망(滅亡)과 5대10국 시대의 개막(開幕)
16, 두두리 이원좌(李元佐)가계의 천주(泉州) 이주(移住)
17, 후삼국(後三國)의 쟁패(爭覇)와 해상호족(海上豪族)
18, 5대 10국의 쟁패(爭覇)와 두두리해상무역
19, 두두리 이원좌 가계의 베트남 이주(移住)
20, 고대(古代)의 베트남
21, 중국지배하(中國支配下)의 베트남
22, 독립시대(獨立時代)의 베트남, 오(吳)왕조
23, 분열(分列)의 12사군(使軍) 시대
24, 정(丁)왕조 시대
25, 전여(前黎)왕조 시대
26, 베트남 최초의 장기집권(長期執權)왕조,
    이(李)왕조시대, 태조(太祖) 이공온(李公蘊)
27, 태종(太宗) 이불마(李佛瑪) 시대
28, 성종(聖宗) 이일존(李日尊)과 봉건왕(俸乾王) 이일중(李日中)
29, 인종(仁宗) 이건덕(李乾德)과 영인황태후(靈仁皇太后)
30, 북송(北宋)의 멸망과 북방민족의 시대
31, 고려와 송 그리고 북방민족
32, 귀족시대의 고려와 두두리 이양혼(李陽焜) 해상무역
33, 문벌귀족(門閥貴族)과 서경(西京)세력
34, 골품귀족(骨品貴族)의 부활(復活)
35, 골품(骨品) 대(對) 반골품(反骨品)
36, 무인시대(武人時代)의 개막(開幕)
37, 집정(執政) 이의방(李義方)
38, 골품귀족의 반발(反撥), 김보당(金甫當)의 난
39, 서경파의 입지(立志), 조위총(趙位寵)의 난
40, 두두리 이의민 장군의 진압전 참전(參戰)
41, 정중부(鄭仲夫)·송유인(宋有仁) 시대(時代)
42, 또 다른 늪, 공주(公州) 명학소(鳴鶴所)의 난
43, 하위무관(下位武官)들의 항명(抗命)과 조위총 난의 여진(餘震)
44, 무신 지도층(指導層)의 갈등(葛藤)
45, 두두리 상단(商團)의 부상(浮上)
46, 조선(朝鮮)이 성공한 고려(高麗)의 쿠데타, 경대승(慶大升)의 난
47, 집단지배체제(集團支配體制)의 중방(重房)
48, 형부상서(刑部尙書) 두두리 이의민의 낙향(落鄕)
49, 두두리 이의민의 정계복귀(政界復歸)와 그림자 정치
50, 부정부패(不正腐敗), 집단지도체제의 한계(限界)
51, 문하시중 이의민 그리고 김사미(金沙彌)·효심(孝心)의 난
52, 이의민 사병부대(私兵部隊) 사령관(司令官) 최충헌(崔忠獻)
53, 배신(背信), 병진정변(丙辰政變)
54, 두두리들의 저항(抵抗)
55, 두두리들의 총궐기, 반최충헌(反崔忠獻)운동
56, 남겨진 두두리 베트남 이왕조, 신종(神宗) 이양환(李陽煥)
57, 영종(英宗) 이천조(李天祚) 시대
58, 고종(高宗) 이용한(李龍翰) 시대
59, 혜종(惠宗) 이참(李旵) 시대
60, 불운의 여황제 소황(昭皇) 이불금(李佛金)
61, 두두리의 반쪽, 진(陳)왕조
62, 세계적인 대제국 원(元)나라와 고려(高麗)의 시련(試鍊)
63, 두두리의 부활(復活)
64, 원(元)의 쇠퇴(衰退)와 고려(高麗)의 독립투쟁(獨立鬪爭)
65, 명(明)의 건국(建國)과 전제정치(專制政治)
66, 두두리 해상무역(海上貿易)의 활약과 명(明)·고려(高麗)의 관계
67, 조선(朝鮮) 건국(建國)의 음모(陰謀)
68, 구국(救國)의 밀사(密使) 이초(李初)
69, 종계변무(宗系辨誣)
70, 고난(苦難)의 두두리
71, 생존(生存)을 위한 선택(選擇)
72, 아! 두두리 정선이씨(旌善李氏)
73, 정사(正史)와 정사(正史)가 아닌 것의 차이
이찬걸 13-11-12 16:21
 116.♡.180.27 답변 삭제  
지난번에 이현웅종중님, 이번에 이상용종중의 글을 잘 읽었습니다.
뭔가 오해가 있는것 같다고 '김포정인'께서 대답을 하시고 집필중인 것의 목차를 달았군요~

1. 그렇습니다. '김포정인'님은 이제 뭔가 오해를 남기고 계심을 아셔야 합니다. 이제는 신분을 밝히고 진지한 의사표현을 종친회에 정식으로 하십시오.

2. '정선이씨'는 지금 '두두리 평전'에 관심쏟을 여유가 없습니다. 족보편찬에 또 하나의 '사이드 이슈'로 만들지 마시기바랍니다.

3. 개인적으로 집필하는 것은 자유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종중 전체를 대변하고 우리 선조를 자기 관점에서 표현하여 우리 선조를 '김포정인의 눈 속에' 갇혀 놓는 꼴이 된다면 아주 기분 나쁠 것입니다. 아주 객관적이지 못한 것들을 사실인것처럼 오도하거나 리퍼런스없는 글들을 나열하여도 우리는 즐겁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역사의 주인공들이기 때문입니다. 설사 우리 선조가 왕을 시해했거나 당대 어느때에, 어느분이 천민이었어도 나는 그분들의 후손임을 확실히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4. '두두리 평전'이란 제목 자체도 혹자들은 부담스러워하고 있습니다. 두두을,두두리가 무엇입니까? 괜한 접두사나 애칭쯤으로 단순하게 여기며, 우리 선조를 일편 속단하게 만들지 마십시오! 그렇지않아도 우리 선조 '이의민'은 글을 몰라서 무당만을 찾았다고 하는등 무속에,도깨비나 귀신에게 운을 내 맡긴듯한 인터넷 기사들이 있습니다.......
 우리 선조가 '경주의 나무 인형'을 숭상했는지, '무속신앙'에 얼마나 깊이 연루되었는지 잘 모르지만 우리가 앞서 이를 자랑이라도 하듯이 애써 이런 표현을 서두름은 무엇인지?..........

 자칫 이런 '두두리,두두을'등의 이름이 우리선조가 숭상했던 '권선징악'이나 도깨비방망이= '정의의 방망이'를 휘둘렀던 멋진 선조쯤으로 표현코자해서....'두두을 도깨비'를 탄생케 하여.. 정선이씨를 도깨비의 원조쯤으로 미화하지 마십시오!

5. 좋은 글 쓰실줄압니다. 고귀한 학식과 방대한 자료와 그간 품었던 귀 종인의 열정을 우리가 다 추앙토록 문을 여십시오! ......... 귀 종중이 '정선이씨'라면 종친회에 이 집필 내용을 알리고 그 성격을 상의하고 논의되어야할 것입니다.

연락바랍니다.                                                  족보편찬위원장  이찬걸(33세, 사직공파)
boss 13-11-18 18:50
 121.♡.110.71 답변  
김포정인님저는이승곤이라고합니다써주신글잘보았읍니다  더알고싶은것이많아만나뵙고싶어이렇게글을올립니다꼭연락주십시요기다리겠읍니다  제번호가010-5313-7437입니다꼭전화주십시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