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애정유지(艾井遺趾)

유적지의 유래에 대한 설명이다. 애정은 황해도 재령군 북쪽10리(里) 되는 지점에 있다. 고려말엽 자생(自生,14世)께서 황해도 안렴사로 지방을 순행할 때에 이곳에 이르러 “이곳은 땅이 비옥하고 골짜기가 넓어서 살 만하다”하니 막하의 손님들이 이곳에 물이 없음을 아뢴 즉, 公이 쑥 두 뿌리가 총생(叢生)하는 곳을 가리키며 “이 곳을 파면 샘물을 얻을 수 있다”하고 즉시 역졸(驛卒)을 시켜 쑥을 뽑아내게 한 후 겨우 몇 자를 파자 맑은 샘물이 용솟음쳐 나오니 매우 시원하고 상쾌하였다. 公은 임기가 끝나고 이곳에 우거(寓居)하였는데 고을 사람들이 마침내 마을을 “애정(艾井)”이라 이름 하였다.

2) 애정(艾井) 유적비명(遺蹟碑銘)

재령군지(郡誌)에 기록된 애정의 유래(由來)를 시작으로 유적비를 세우는 동기와 목적 등을 기록하고 있다. 애정은 세월이 흐름에 벽돌이 마모되고 비에 씻기는 등 자취가 희미해 져가자 선조들은 이가 남의 수치를 당하는 원인이 됨을 인지하여 이 우물을 표시하며 선조를 추모하는 의미에서 사적을 기록하여 비(碑)를 세우기로 했다. 여기에서 애정의 유래, 아름다운 詩와 그 주인공 되시는 14世 자생(自生)과 公의 아들 15世 존실(存實)과 그의 세 아들과 그 후손 數 代를 언급하고 있다. 정조(正祖)4년 경자년(1780), 후손 정규(正奎)가 지었다.

3) 애정유적 비각(碑閣) 기문(記文)

애정의 비를 세우고 오랜 시일이 흐르매 비바람이 몰아쳐 오래 전하는데 문제가 있으므로 작은 비각을 세워 비석을 보호토록 하면서 기록한 애정에 관한 기록문이다. 기록일시가 유조집서(柔兆執徐)인데 古 甲子로 병진(丙辰)년이라면 내용의 정황상 1856년 (철종7년)이 유력하다. 애정 유적비 비각 발문(跋文)과 함께 후손 순흠께서 지으신 애정비각 상량문(上樑文) 또한 1856년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